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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음력 8월 10일 (9월 3일)

2019-11-04 2 Dailymotion

■ 세종 6년 (1424) : 계집종과 양민 사이의 자식은 양민이 될 수 없도록 하자는 건의를 불허

■ 세종 11년 (1429) : 두 고을에서 승려가 없는 절의 기와 등으로 관청을 보수할 것을 청하자 허락함

■ 광해 8년 (1616) : 왕이 몸소 무과 24명을 뽑고 문과 10명은 영의정이 뽑다
⇒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라 왕이 무과 합격자를 직접 뽑고 문과 합격자는 영의정이 책임지고 선발하도록 했다

■ 숙종 1년 (1675) : 윤휴의 청에 따라 대왕대비 상의 상복을 참최, 즉 3년 동안 입는 상복으로 정하다
⇒ 숙종 초, 할머니인 효종 부인의 상을 큰며느리로 인정해 3년 상으로 할 것인가 둘째 며느리로 생각해 1년 상으로 할 것인가는 효종의 정통성을 인정 하느냐 아니냐의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인조의 큰 아들인 소현세자가 아닌 둘째인 효종(봉림대군)이 왕이 되고 이어서 아들 현종, 손자 숙종이 뒤를 이었는데 효종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현종과 숙종의 정통성도 모두 부정되는 매우 민감한 정치적 문제였다.
당시 1년 상을 주장한 서인의 거두 송시열은 숙종의 미움을 받아 결국 15년 후 귀양길에 사약을 받고 죽었다.

■ 숙종 42년 (1716) : 승려와 간통한 궁인을 형조에 넘기다

■ 정조 5년 (1781) : 문무관이 길에서 만날 때 회피하는 법을 정하게 하다
⇒ 문관이 무관을 무시해 직급이 높은 무관을 만나도 낮은 문관들이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자 이를 바로 잡도록 했다

■ 고종 23년 (1886) : 육영공원에 좌원과 우원의 학제를 두다
⇒ 육영공원을 좌원과 우원으로 나눠 좌원에는 젊은 문무관을, 우원에서는 똑똑한 유생들을 선발해 교육하도록 했다

■ 고종 30년 (1893) : 전보총국에서 오래된 전선의 보수를 청하자 허락함

■ 고종 31년 (1894) : 임명된 후 부임하지 않은 기장현감을 평민으로 만들다
⇒ 조선 말기가 되자 현감에 임명되고도 부임하지 않은 양반이 있었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